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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터뷰] 성공회대 김기석 총장 “인공지능 시대 인간, 고통·연민·사랑으로 성숙하는 고유한 존재”

"연민(compassion)은 고난, 수난(passion)을 함께(com)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은 거울신경세포*가 있어 이웃의 고통을 함께 느낍니다. 인공지능은 동물이나 사람이 고통을 받을 때 경험을 데이터로 학습시킬 수 있겠지만 고통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외부 자극에 의해 자아 시스템이 반응하는 고통, 아픔이 없이는 삶을 영위해나가지 못합니다. 고통을 통해, 인간이 형성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성공회대학교 김기석 신임총장은 현실로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 고통과 아픔, 연민을 통한 인격의 성숙을 인간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사제(1990년 서품)이자 2004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조직신학 등을 가르쳐온 신학자다.  과학 또한 비중있게 연구해온 그는  '종의기원 VS.신의 기원 :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한 신학자의 응답'(2009년)에 이어 최근 '신학자의 과학산책'을 출간했다. 10여년 간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추가해 집필했다.

6일 취임식을 마치고 집무를 시작한 김기석 총장을 7일 서울 구로구 온수동 성공회대에서 만났다.

인공지능(AI)시대, '인간다움'이란

인공지능이란 사전적 의미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모방한 지성을 지닌 존재, 혹은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지능을 의미한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부분적으로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이고 있다. 이 시대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인간다움으로 성숙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과 인생에서 격는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통해서 성숙한다고 봅니다. 참 인간으로서 깊은 인격성의 성숙, 높은 수준의 인격적 성취는 자기와 타자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이 죽음 없이 생겨날 수 없고 고통 없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고통없이 고통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김 총장은 고통을 통해 인간다움, 인격이 형성되며 인격의 성숙에 필요한 자기와 타자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말한다.

먼 미래 강한 인공지능, 즉 기계기반 자아를 가진 정신적 존재가 출현하는 특이점이 실현될 수도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몸을 가진 인간은 기계에 바톤을 넘겨주고 사라지는 존재라는 주장도 한다.

이에대해 김 총장은 "사실 우주가 나가는 방향이 지능에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며 "결국 생물 36억년의 역사를 단순화해서 보면 지능적인 존재가 확장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론 박테리아 등 기본 현상이 생명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는 점 또한 본질이지만 그럼에도 호모사피엔스가 최종적인 인류로 살아남은 것을 보면 결국 지능의 문제"라며 "이런 측면에서 강한 인공지능이 실현된다면 인간보다 우월할 수 있다. 몸을 기반으로 한 생체기반 지능에서 인간 진화의 최종단계는 기계 기반 지능으로 볼 수도 있다. 우주 안에서 확산되가는 것도 유리하다. 나노 이하 등 물리적 한계를 극복, 지능의 씨앗을 우주적 확산해 나가도 쉽다. 지능으로 우주가 채워지는 방향성을 생각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우려하는 부분은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난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과 인류의 소멸이다. 그럼에도 신앙적 측면에서 "인간이 피조물가운데 첫 열매로 소멸하는 존재로 창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해 김 총장은 "인간이 창조주에 대항, 자유와 지식을 얻은 대가가 실존적인 고통이었다. 죽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지혜를 얻어 죽음을 인지하자 엄청난 소외와 좌절감을 경험하는 고통에 직면했다. 인공지능은 지능의 측면에서 뛰어나지만, 고통, 연민, 사랑은 인간 고유의 것이다. 인공지능은 새로운 도구로 남을 것이다. 지구를 책임지고 생명을 보호해나가는 것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서 인간들이 풀어가야 하는 과제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나눔의 집 사목 거쳐 영국 버밍엄대 유학

어떻게 그는 과학을 공부하는 신학자가 됐을까? 불확실성과 확률로 표현되는 '우연'과 의심할 수 없는 신앙적 부르심(calling)이란 '필연'의 작용이 있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어려서 어머니와 누나를 잃는 실존적 고통은 그의 근원적 물음이 된 끝없는 우주처럼 바닥 모를 심연이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를 했어야 했습니다. 대학을 갈때 과학에 대한 열망에 이과로 전환, 항공대 항공기계학과를 갔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서울의 봄(1979년 10ㆍ26 사건 이후 1980년 5ㆍ17 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 전까지의 민주화 운동시기), 5.18 광주민주화 운동 등으로 학업에 전념할 환경이 못됐습니다.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으며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고, 신학을 공부하게 됐죠."

사제가 된 김 총장은 민중신학(1970년대에 생겨난 한국 개신교의 실천신학) 등 영향으로 소외되고 가난한자들에 다가가고 함께한 예수를 복음의 본질이라고 봤다. 달동네 빈민지역인 강북구 삼양동에서 나눔의 집을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과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 관심을 묻어두고 살 수밖에 없었다.

1998년,  대학 졸업 후 10년 만에 영국 버밍엄*으로 유학 길에 오른 것이 전환점이었다. 그 배경에는 영국이 자국 선교사 교육보다 제3세계 학생과 리더들을 초청하는 장학프로그램을 확대했던 당시 영국 교단의 적극적인 해외선교 정책*이 있었다.

김 총장은 "버밍엄대학 도서관에 과학과 종교 책이 있는 것을 발견, 깜짝 놀랐다. 과학에 대한 열정, 물리학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신학과 과학, 과학과 종교 주제가 유럽적 맥락에서 매우 진척 돼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버밍엄 대학에서 '빅뱅 우주론과 창조신학'주제로 선교학 석사를, '한국적 상황에서 과학과 종교와 대화(Dialogue between Science and Religion in the Context of Korea)'로 2004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 총장의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이다. 그는 기사 작위(KBE)를 받은 영국의 유명 과학자이자 인기있는 신학 저자 중에 한 사람이다. 영국 켐브리지 대학 물리학 교수(1968~1979년)로 석좌 교수직을 제안 받았지만 거절하고, 49세에 신학을 시작했다. 이후 사제(1982년 성공회사제 서품)로 사목를 하던 그는 켐브리지로 다시 돌아가 트리니티 홀과 퀸스 칼리지 학장을 역임했다.

"깊게 들어가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의 발견이라는 믿음을 고백하고 결단하는 것이죠. 세계 존재의 의미를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고백하고 결단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학과 과학 두 관점…”창조는 사랑” 자유이자 선택의 문제 

"과학이 신앙적으로, 종교적 믿음이 과학으로 다 설명될 수 없습니다. 창조가 하나님의 의지로 이뤄졌다고 고백하지만 과학에서는 138억년전 빅뱅을 통한 특이점(singularity)에 의해 형성됐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빅뱅을 일으키셨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두 개의 스토리를 병렬적으로 결합시키는 정도에 불과할 수 있어요."

"아름다운 천체와 자연, 사람들이 창조주를 찾고 고백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발현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자유이고 선택이죠. 양자적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빅뱅과 그렇케 탄생할 수 있는 무한대의 우주 중에 하나가 실현된 것이라는 확률로 볼 수도 있지만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신앙이고 신앙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김 총장은 과학에서도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며 특히 우주의 시작인 빅뱅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는 자연스럽지 않은, 이상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스티븐 호킹도 빅뱅 이전의 상태를 설명하려 했다. 그는 빅뱅이 일어난 것을 신으로 귀인하려 하지 않았다. 빅뱅은 공간도 시간도 없고 가역적 현상도 없는데 어마어마한 우주가 발생하는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과학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은 바닷가에 파도가 쳐서 수많은 물거품이 생성됐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빅뱅은 무수하게 많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확률적으로 원자가 형성되고 별과 운하가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우주가 이 우주다. 다세계이론, 다우주이론으로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빅뱅을 특별하지 않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빅뱅, '없음'에서 '있음'으로...'마음'의 고리

"세계는 존재와 비존재 사건입니다. 빅뱅이 일어나서 존재라 여기는, 시간, 공간, 물질이 나타났습니다. 빅뱅으로 생겨나는 것을 존재라고 본다면 (빅뱅 이전의) 비존재에서 존재가 온 것입니다. 비존재와 존재 즉, 있고 없음의 현상적인 차이가 본질적으로 하나로 연결된 겁니다."

논의의 차원을 확대해 '존재, 인식과 마음'을 주제로 우주의 기원에 대한 좀더 깊은 설명이 이어졌다.

"이 부분은 불교와 노장사상과도 연결되는 부분 입니다. 파도라는 현상을 빗대어 설명하면, 마음이 바다라면 바람이 부니 물결이 이는 거죠. 파도가 현상, 바다가 마음, 바람이 마음의 흔들림입니다. 마음이 동해서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불교적 관점은 마음이 먼저있고 현상이 있다고 합니다."

김 총장은 빅뱅을 깊이 생각해보면, 비존재와 존재가 하나로 연결되는 지점에서 비실재적인 사고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화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그 의미에 맞다고 볼 수 있다"며 "스티븐 호킹은 빅뱅, 허수, 허시간(t=0) 이전에는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창조 이전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현상은 창조 이후에 생겨난 상대적 현상과 존재로 피조물의 상대성, 필멸성, 결핍, 한계를 설명한다. 그 이면에 창조주의 전지전능이 있다고 보고 창조 이전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초기 기독교 사상가이자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추론을 통해 모든 절대성은 신의 속성으로 구분했다.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는 동물이 특정 움직임을 수행할 때에나 다른 개체의 특정한 움직임을 관찰할 때 활동하는 고등 동물의 신경세포다.

*버밍엄(Birmingham)은 런던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영국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다. 중서부 웨스트미들랜드 주의 주도로 제철 공업이 발달했다. 멘체스터와 더불어 산업혁명의 두 심장도시로 외국인 노동자들 유입이 많았다. 인구 30%가 유색인종으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등 서아시아 커뮤니티가 크게 형성된 다문화사회로 문화연구 등 제3세계 신학이 발달했다.

*김기석 신부가 영국 유학 길에 오른 데는 당시 영국 교단의 적극적인 해외선교 정책이 있었다. 영국 대부분의 교단이 선교사 훈련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80~90년대 들어 포스트 컬러니얼리즘이 유행하면서 영국은 자국 선교사 교육보다 제3세계 리더와 학생들을 초청하는 장학프로그램을 했다. 9개대학으로 구성된 셀리오칼리지에 동시에 1학기 70개의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200여명 모이기도 했다. 공부했던 영국 성공회 300년전 설립된 해외선교단체 USPG에서 운영하는 '어센션(승천)' 칼리지에도 20개 국적의 학생들이 있었다.